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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후기 | (후기)[CLC 개칭 50주년 기념 강좌] 수강 후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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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8-06-25 16:43 조회2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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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 개칭 50주년 기념강좌 제2강 수강후기>

 

 

 

[사회교리 원리들과 사회생활의 근본가치들]

 

계 수 정 (릿다)

 

 

 

작가 서정주가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은 바람이었다라고 자서전에서 얘기했다지요. ‘나를 키운 팔 할은 무엇인지 중년의 언덕에 서서 돌아보니 오랜 신앙생활을 하신 선조들의 은덕으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몸 담아온 성당생활과 미사전례였습니다. 그 특별한 팔 할에 깃들어 있던 섭리와 은혜가 얼마나 섬세한 것이었는지 돌아보자니 새삼 모든 것이 감사한 요즘입니다. 나이 들어가며 경험과 식견이 넓어지면서 이웃종교들을 접하고 각각의 좋은 점들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가톨릭신자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가톨릭교회가 그 어느 종교보다도 지금-여기의 세상과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와 불평등의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실천적인 면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운동을 거쳐 세계 역사에 유례없는 민주국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할 것인지 그 시각을 재정비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요즘, 한국CLC의 특강에서 그 고민과 실천적인 지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주님의 배려와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적 불평등을 가톨릭교회는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던 차였습니다. 소식지에서 알게 된 박동호 신부님의 강의 <사회교리 원리들과 사회생활의 근본가치들>가 그 질문의 답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줄 것 같아 참여하게 되었고, 자칫 딱딱하거나 강성일 수 있는 내용을 강의시간 내내 유머로 풀어주신 신부님 덕에 웃어가며 사회정의에 대해 새롭게 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내 형제로 삼을 것이냐?”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신부님이 강의를 열며 던지신 질문부터가 새삼 화두처럼 내 머리를 쳤습니다. 몇 백번을 들어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내 삶 속에서도 내가 반가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고 누군가는 그 무리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자각, 내게도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뱃속 어딘가를 찔러댑니다.

신부님은, 예수께서 이미 몸소 그 답을 알려주셨다고, ‘기쁜 소식, 해방의 소식을 누구에게 먼저 알려주셨는지를 생각해보라 하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의 자아완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처럼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 실천해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세상 한 가운데들어가는 종교이므로, 세상과 초연하게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게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와닿습니다. 그동안 세상과 무관하게 때 하나 안묻히면서 초연히 살고 싶었나봅니다. 모든 말씀이 낯익은데도 다시 낯설게 새로운 얼굴로 다가옵니다.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도구로서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성찰, 판단, 실천을 할 때 일곱 가지의 기본원리와 근본가치를 기준으로 삼도록 촉구한다고 정리해주십니다. 이런 재정리가 필요했던 차였습니다.

첫째로, 인간은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 하느님과 닮은 존재이므로 존엄하며, 존엄성은 역사 속에서 인권으로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발전됩니다.

둘째로, 국가는 집단이나 개인이나 더욱 충만하고 용이하게 본성에 부합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회인 공동선을 실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로, 지상의 모든 재화에 대해 모든 사람은 자기발전을 위해 공동사용권을 가지며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합니다.

넷째로, 사회적 약자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소환장입니다. 교회는 재화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우선적으로 선택되어야 한다고 그 보편목적을 정리합니다.

다섯째로, 국가와 같은 상위기구는 사회단체와 같은 하위기구를 대신하려 들지 말고 보조하는 것을 우선해야하며, 이에 교회는 특정형태의 중앙집권화와 관료화와 복지지원을 반대하고 공적 기능에 대한 국가의 부당하고 과도한 개입을 반대합니다.

여섯째로, 교회는 모든 사람이 책임을 갖고 공동선을 위해 의식적으로 공공생활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참여권을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고 부정하는 전체주의국가와 독재국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일곱째로, 현대사회의 상호의존의 유대와 심각한 불균형은 모든 이의 연대를 요구하며 연대성은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로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에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해 자기를 잃을 각오로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들 하나하나가 되짚어가며 공부하고 싶게 합니다. 불을 지르는 말씀 같아서, 강의를 듣고 나니 사회교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집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서도 좀더 알고 싶어져서 관련 도서를 구입해보려고 합니다. 세상의 많은 이론들과 의견들을 듣고 살았지만 교회에서 무엇이라고 삶을 말하는지에 대해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내 삶의 신호등으로 삼아 다시 질서를 잡는 기준으로 삼고자 합니다. 세상의 표지판 역할을 하려면 표지판이 제대로 된 표식을 보여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는 세상의 이라 하셨습니다. 평신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국제질서, 생태문제 모두에 그리스도인인 우리 평신도가 어떻게 관여하는가에 따라 이 세상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이미 국민의 참여가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만큼 더 세상살이에 관심이 갑니다. 분배의 균형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정치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제 평신도로서 깨어있는 눈으로, 내 목소리를 찾으며 살고 싶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교회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를 좀더 적극적으로 조율하는 작업을 시작하도록 이 강의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앞으로 깊은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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