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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 <가톨릭신문>[신앙에세이4]모든것 안에 계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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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8-10-22 18:22 조회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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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

발행일2018-10-21 [제3116호, 3면]

남편의 퇴직 후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우리 부부는 귀촌생활 실습차 연천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중에 첫 외손자가 태어나 돌봐주려고 용인 광교산 자락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도시가 가까움에도 제법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맞춤한 집으로 손수 이끄신 그 여름. 가꾸지 않은 텃밭에는 쑥과 머위가 무성하였고 마당엔 떨어진 금빛 살구가 그득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왔을 때 문득 눈에 들어 온 것은 집 남쪽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플라타너스 나무. 그 나무는 낮 내내 우리 집으로 오는 햇볕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고 서서 한 줌의 햇살을 아쉬워하는 나를 못 본 체 했지요. 날씨가 추워지는 만큼 제 안에 얄미움도 상승하면서 이 넓은 땅에 하필이면 그 자리에 서 있냐고 불평하며 눈을 흘겼습니다. 그 날도 그런 불편함으로 플라타너스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데 문득 ‘너 몇 살이야? 어디서 왔어?’라는 플라타너스의 물음이 올라왔습니다. 순간 놀라움과 알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아득히 높은 플라타너스를 올려다보며 ‘그럼 너는?’ ‘우와 한 백 살은 됐겠구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척박한 돌 틈에 여린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을 맞아가며 너를 세우고 세우는 모습. 네 그늘 아래서 농부들이 나누던 이야기, 동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기특한 모습까지 모두를 침묵 속에 받아들이면서 그토록 넓게 네 가지를 펼쳐 놓았구나! 플라타너스의 한 생을 돌아보는 제 마음은 경이감과 연민과 미안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한 존재를 내 필요나 욕망의 눈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지혜를 나눠준 나무. 가을이 지나고 겨울. 빛 샐 틈 없이 무성했던 잎을 떨군 플라타너스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종일 손자와 씨름하고 돌아와 작은 집 침실에 누우면 나무는 검푸른 하늘 깊이 가지를 펼쳐 별들을 걸어놓고 노란 달빛을 비춰주며 소중한 하루를 함께 나눴습니다. 새벽녘 잠이 깨어 나무를 바라보면 여전히 그 자리에서 별빛을 돋운 채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노래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명자(데레사·제1대리구 동천성바오로본당)

*** 가톨릭신문 "신앙에세이" 란에 실린 이명자회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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