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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아마존 프로젝트 파견회원의 나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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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04 20:02 조회3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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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레나 페레즈(애칭, Lore)는 에콰도르 CLC 회원으로 현재 아마존 프로젝트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 공동체의 사명과 일치하는 방법으로 생 프런티어에서 자신의 삶과 활동에 대해 성찰한 것을 매달 나누고 있습니다. 

이 글은 로(Lore)의 두번째 나눔입니다.​

 

 

 

 

내 안에 굳어있는 토대 무너뜨리기(Breaking up the ground within me)

 

 

이 두 번째 보고서에서, 저는 이곳에서 8주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곳을 알아가는 신선함이 조금은 사라지고 있다는 나눔을 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일이 줄었습니다. 레티샤(Leticia)는 인구 50,000명 가량의 작은 마을로 문화 활동이나 여가 활동을 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적어 보이긴 하지만 저는 이 지역에서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느끼며, 그 새로움이 좋습니다. 특히 이곳 공동체를 방문하면서 저는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접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경험들을 통해 저는 하느님 나라의 새로움을 향해 지속적으로 마음을 열어가게 됩니다.

 

지금은 제가 기존에 지고 있던 이데올로기, 감정, 지위, 지식 등으로 가득 찬 가방을 내려놓게 되는 새로운 시기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들은 제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저를 옭아맸습니다. 이제 저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기 위해서 제 안에 견고히 자리 잡은 그 토대를 깨기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외연적인 것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토대를 깨야 저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싶어하시는 살아계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외부에서 그분의 존재를 찾으려는 헛수고를 접을 때에만 저는 살아계신 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저의 두려움, 욕망, 공허함, 의구심과 같은 것들을 직면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비록 때로는 잘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제 옆에 그리고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저를 하느님께로 가장 강하게 이끄는 것은 제가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나의 실수와 한계 그리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은총들을 인정하면서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제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그러나 자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환영들(ghosts)”(())은 침묵의 고독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침묵 안에서 저는 가끔 이를 깨닫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관점과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 지역 공동체들의 가정에서 대부분 Direct TV 서비스(위성 방송수신 안테나)를 이용하고, 인터넷 및 최신 기술을 장착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비들이 젊은 친구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젊은이들은 서구 사회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옷차림(남자들에게 너무 꽉 끼는 바지)이나 머리스타일, 그리고 걸음걸이나 행동 등이 무척 닮아 있습니다.

 

이곳의 부모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부모들이 하는 고민을 똑같이 합니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옷차림이나 사고방식에 대해 불평을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TV와 기술의 영향력으로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은 급격하게 변화되었습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저는 그들이 이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가 없다고 느낍니다. 전력이 온종일 공급되는 지역의 아이들은 덜 뛰어놀고 자연을 즐기는데 시간을 덜 씁니다. 노인들은 그들의 민족 정체성이 어떻게 상실되고 있는지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또한, 노인들은 미국 스타일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어떻게 그들의 관습과 습관, 심지어 언어조차 잊혀져 가는지를 걱정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세계화 도구(인터넷이나 위성 방송 수신 안테나 등)는 그들을 빠르게 흡수해 버리는 괴물입니다.

 

제가 보아온 것들로부터, 저는 때로는 "그들은 그러한 도구들을 가져서는 안된다, TV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또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과 그만둬야 할 일을 한정짓고 제언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처럼 그들도 권리를 갖는 인간으로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옳은 것을 행하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왔고 여전히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저는 침묵 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제게 나타나십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느낍니다.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나와 함께 하면서 그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거라. 이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당분간은 이 지점을 통해 만나가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안아주어 제가 그들과 동행할 수 있도록 그들이 자신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어떻게 그러한 서구식도구들이 우리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토론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결국, 늘 그래왔듯이, 그들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이 이 지역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원인 중에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얘기를 나누었던 많은 청소년들은 더 이상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우리의 존재보다 우리가 가진 지식이 더 높게 평가받는 이렇게 고도로 경쟁화된 서구사회에서 살아갈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메스티조(mestizo) 인종으로서 우리는 원주민으로 살아가는 형제들을 존중하며 기쁘게 받아들일 준비나, 하나의 문명이 심지어 우리 소망에 반하여 휩쓸려가는 이런 변화의 과정에 동참할 준비가 그리 잘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여전히 차고 넘칩니다. 지금 나누는 것들은 제가 살펴보는 것들로 부터 도출된 몇 가지 생각들일 뿐입니다.

 

이곳의 속도는 다릅니다. 저는 훨씬 느린 속도로 이 새로운 비트에 맞춰 춤추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때때로, 미사 강론 시간에 성찰한 것을 나눌 차례가 되면 저는 제 피 안에 교사로서의 기질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곤 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질문하고, 일상의 삶을 이미지화하고, 하느님께서 여러분 공동체를 위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 목적은 그러한 말이 그들의 일상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나눔을 마칠 때 사람들이 박수를 쳐서 저를 놀라게 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제가 말한 무엇인가가 분명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성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날에 저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수다를 떨고, 이집 저집 다니고, 식사를 한 후 하루를 마칩니다. 계획도 없이,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것이 목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양의 냄새가 나는것입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을 잘 살피고, 한 명씩 알아가고,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그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선하신 목자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들 안에서 그리고 제 안에서 조용히 일하는 분은 바로 그분이십니다.

 

저는 도움이 되는 생각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주로 본질에서 벗어나게 하는 질문들입니다. 저는 이제 영신수련에서 말하는 분별의 규칙들이 제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도 가지 않는 곳으로 떠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대가가 큽니다! 여러 모험들로 완전히 지치고, 목마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신히 도착하지만 그곳에는 성당이 없고 운이 좋은 경우에야 일 년에 딱 두 번, 성탄절이나 부활절 미사 때나 신부님이나 선교사가 찾아와 방문하며 지원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얘기를 들어주기를 진심으로 열망하고 있어 가정 방문을 하면 보통 한 시간 이상 지속됩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들의 얘기를 멈추고 싶지 않고, 이 은총의 순간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 때 저는 제가 이 지역으로 파견된 것에 대해서 깊게 감사드리게 됩니다. 가는 과정이 험난하고 지치지만 그 장소에서 이들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또한 청년회(Vicariate Youth Group)와 함께 리더십에 관한 강연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하여 저는 제가 젊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뿌리신 것을 거두실 수 있는 씨뿌리기에 좋은 땅입니다.

 

지금까지가 이 두 번째 달에 대한 간략한 보고입니다. 제 고독을 나눌 수 있도록 아날루 (Analu)가 소개시켜준 제 친구 수녀님들(타바팅가의 TatiMaria)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안에는 일상적인우여곡절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의 동반과 나눔이 저에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멀리 떠나면, 당신은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제게 해 준 말입니다. 제가 확인한 또 다른 진리이기도 합니다.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제 가족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가족들은 메신저 어플리케이션(Whatsapp)이나 전화를 이용하여 언제든지 저와 소통하며, 늘 저의 안위를 염려합니다. 또한 형제자매와 다름없는 저의 영혼의 친구들도 라틴 아메리카 지역 곳곳에서 저를 염려해주고 저를 위해 기도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전화를 겁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며 저는 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고, 이 사명 안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을 나누고, 실질적인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반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끝으로, 제가 매우 즐겁게 수강하였고, 많은 도움을 받은 사회 정치 입문 과정에서 들은 한 구절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는 그저 하나의 이론이 아닙니다. 이는 행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바로 이것을 매일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CLC 형제자매들에게 이 말을 실천하고 여러분의 나라와 세계의 가장 빈곤한 사람과 직접 만나고, 이들에게 봉사하려는 열망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라고 격려합니다. 언제 여러분의 때가 오는지를 식별하고 발견하여 실행해 나가십시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긴 글에 힘드시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이후 보고서에는 좀 더 짧게 써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저를 응원해 주세요. 저 또한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L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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