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평신도를 위한 침묵피정 후기(2) > 모든 것 안에서

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나눔터
- > 나눔터 >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 안에서

(후기)평신도를 위한 침묵피정 후기(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08 13:57 조회579회 댓글0건

본문

CLC 침묵 피정에 다녀와서

 

배영자 (안나)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주십니까?”

 

이전 두 번의 침묵피정 경험을 통해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다시 4월 여주 피정을 신청했다. 이번엔 후배도 함께 가게 되어 더욱 감사한 마음이었다.

 

때는 4, 여린 새순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신록과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계절이다. 이런 때에 수녀님들의 정갈한 기도가 함께 하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이 곳 피정의 집에 온 것만으로도 이미 예수님을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은혜 속으로 성큼 들어 선 것이리라. 여기에 침묵하며 머무는 것만으로도 피정 목적의 절반 이상은 이미 이루어졌다.

 

여주 피정의 집은 십자가의 길 끝 동산위에 자리 잡고 있는 대형 예수님상이 명물이다. 예수님상은 피정의 집은 물론 여주 도전리 일대를 넉넉히 품어 안고 있다. 피정집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고 묵상을 위한 성서 구절을 잠깐 읽은 후, 나는 곧바로 십자가의 길로 올라갔다. 동산을 오르며 아직 떨쳐내지 못한 남기고 온 일들과 걱정거리들이 하나하나 밟히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무거웠지만, 길 위의 철쭉, 구석구석 가만히 피어있는 야생화들, 이름조차 없는 여린 풀들에 감탄하면서 마음을 추스려 어느 덧 정상에 이르렀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동산 위 예수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주님, 제가 다시 왔어요. 지난 1년 덕분에 그럭저럭 잘 보내고 또 왔습니다.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여주 피정의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수녀님들이 손수 준비해 주시는 매끼 식사이다. 첫 날 저녁 배추국과 계란찜 두부조림 샐러드 묵은 김치는 그 날 제대로 한 끼 식사도 챙기지 못한 내 속을 편안하게 풀어주었다. 최근 김훈 작가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주변 동거차도에 잠시 머물 때, 민박집에서 미역국과 냉잇국을 먹으며 인간이 자신의 노동으로 자연과 직접 교감함으로써 빚어지는 맛의 질감을 느꼈고 특히 꼬인 내장이 펴지고 뭉친 마음이 풀어졌다고 쓴 것을 읽었다. 첫 날 배추국이 딱 그런 맛이었다. 배추와 된장과 수녀님들의 기운이 어우러진 그 배추국은 최근 불규칙하고 대충 때우는 식사로 불편했던 속을 한꺼번에 풀어주면서 피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내 몸을 준비시키고 정화해 주었다.

 

이런 밥을 먹고 자연을 생생하게 누리며 성서말씀을 침묵 중에 묵상하고 길잡이 선생님의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안내로 이끌어지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피정에서 하느님은 나에게 엄마의 모습을 통해 더 가깝게 다가와 주셨다. 묵상 말씀가운데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는 구절에서 아기 때 엄마의 사랑 속에 푸근히 안겨있는 나를 기억하며 그 사랑으로 내가 가득 채워지는 행복한 느낌 속에 한참 잠기어 있었다. 청명한 낮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동산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릴 적 어둑어둑해진 저녁까지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부르러 오신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며 내가 수녀님 엄마가 해 주신 밥을 먹으러 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순간, 어린 시절 엄마가 챙겨주신 밥과 여기서 내가 먹고 있는 수녀님의 밥이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어느 덧 30년이 흘러 기억마저도 희미하고 무뎌진 내 마음에 엄마에 대한 감사와 회한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엄마와 수녀님의 밥을 통해 하느님께서 나를 지속적으로 돌보아 주시고 계심을 생생하게 체험하였다. 내 안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이토록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놀라울 정도였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런 사랑을 갈망해 왔는지, 내가 망각했거나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사랑이 아주 가깝게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구체적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전해주신 분이며, 그 사랑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나에게 이해된 하느님 사랑은 나를 돌보아 준 엄마였으므로 나는 이 때 자연스럽게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 하느님 엄마를 떠올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정작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우리의 언어나 생각을 넘는 지점인 것 같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생각과 과잉의 언어를 내려놓고 침묵 속에서 고요하게 말씀에 잠기는 피정에서 하느님 내 안에 잠겨있던 것들을 끄집어내시어 당신의 사랑 안에서 나를 새롭게 만나도록 이끌어 주셨다. 하느님은 정말이지 기대 이상이시다.

  

08da3d3452435e6d019a17b6ed356ea2_1494219
 

 

* 2017년 4월 21~23일 여주 스승예수 피정의 집에서 진행된 [평신도를 위한 침묵피정] 후기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histian Life Community     -
희망학교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