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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쁨을 평신도 이나시안의 관점에서 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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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26 14:25 조회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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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 가정을 주제로한 국제양성모임

2017716-21, 마드리드 꼬미야스 대학

 

사랑의 기쁨을 평신도 이나시안의 관점에서 읽기. (프랑스어 원문)

 

데니스 도벨스타인 (세계CLC 상임위원, 고문)

마리 끌레르 보델랏 (불어권 벨기에 국가 상임위원)

 

기쁨

가정: 성삼위 하느님을 생생하게 드러냄

 

19917, 오스트리아 쪽 알프스 산맥 어딘가였을 겁니다. 첫 가족 여행이었죠. 사실, 우리 큰아들 안토니오는 생후 겨우 열 달 째였습니다. 안토니오는 침대 발치에 만들어 둔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습니다. 마리 끌레르와 저는 잠에서 깼지만,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젊은 부모들에게는 막 깨어나는 아기의 옹알이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갑자기 조그만 손 하나가 보이고, 뒤이어 또 다른 손이 올라옵니다. 안토니오는 몸을 일으킵니다. 발 끝으로 서보지만 겨우 침대 사이드 가드에 닿는 수준입니다. 잠결인지라 방향 감각도 없고 보는 곳도... 엉뚱한 곳을 보고 있습니다. 아직 어려서 몸을 제대로 돌릴 수 없기에 안토니오는 매트리스에 철퍼덕 주저 앉습니다. 우리는 그가 빠르게 반대편으로 기어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다시 한 손이 올라오고 다른 손이 올라오더니 갑자기 작은 얼굴이 우리 쪽을 향해 쑥 올라옵니다. 얼굴에는 여기 계신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 가득합니다.

 

기쁨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순수하고 함께 느끼는 기쁨. 세 사람이 함께 있다는 행복함뿐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쁨과 사랑 사이에 더 이상 그 어떤 차이도 없는 이 순간은 완벽에 가까운 순간입니다.

 

저는 안드리에 루블료프(Roublev)의 성삼위 그림 앞에서 수백 시간을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아내 마리 끌레르와 아들 안토니오와 함께 있었던 그 영원함의 순간이 제게 있어 성삼위의 신비로 들어가는 선택된 특권의 장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님의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은 이렇게 제가 대담하게 표현해도 정통성에서 어긋나지 않았다1)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교황님의 말씀은 개인 성소로서 결혼 성소를 선택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저희는 이 글에서 그 내용을 너무 많이 인용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결혼의 존엄성을 축하하는 다음의 말씀을 읽었을 때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에 대해서는 나누지 않을 수 없네요.

 

이러한 관점에서 부부의 풍요로운 관계는 하느님의 신비를 찾아 설명하는 모습이 됩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하느님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사랑의 성령을 바라보는, 삼위일체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점에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친교를 이루시며, 이는 가정을 통하여 현실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2)

 

 

현실에 근거한 문서; 우리 온 존재를 두고 읽어내려 가야 함.

 

저희는 이 자리에서 사랑의 기쁨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이냐시안의 관점에서 사랑의 기쁨을 읽고 나눠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처럼 저희는 우리 온 존재의 차원에서 사랑의 기쁨을 읽었습니다. 분명 교황님께서는 이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사실사랑의 기쁨은 육화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교황청에서 나온 문서 중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돌아보고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을 찾아보라고 초대하는 문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때론 어느 한 편에 치우치기도 하지만,사랑의 기쁨은 초월성으로 초대하는 것과 우리 자신의 인간됨을 존중하는 것 두 가지를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데, 열정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사랑의 기쁨 서문을 읽을 때 저는 아주 기뻤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즐거움이나 열정이 부족한 사랑은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3)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주교회의를 언급하며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을 책임의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시노드 교부들은 그리스도인 가정이 혼인성사의 은총에 힘입어 가정 사목의 으뜸 주체가 되어, 특히 부부와 가정, 가정 교회의 기쁜 증언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4)

 

우리는 각자의 개인적인 삶의 체험을 놓지 않으면서 이 문서의 정수에 젖어들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는 이 3일간의 모임 동안 우리가 개인적으로 읽은 것들을 서로 나누는 바로 이 시간을 통해 전체 공동체에게도 유효한 사도적 초대와 자리가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매우 인상적인 내탓이로소이다 (메아 쿨파 mea culpa)

 

평신도로서 우리는 제도 교회의 이름으로 교황님께서 하신 내 탓이로소이다에 아주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또한 혼인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신학적 이상, 곧 실제 가정의 구체적 상황과 현실적 가능성에 동떨어진 것으로 제안하였습니다.” 5)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혼에 대해 교회가 가르치는 것들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용서를 청하시는 것이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 각자에게 하신다고 느낍니다. 때로 우리는 결혼한 삶의 현실에 대해 말씀하시는 방식에 당황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이해는 했지만 그런 말씀은 우리가 느끼고 있었던 내적 충동을 약화시켰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면서 성 요한의 말씀을 성구로 골랐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와 함께 있기를.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완전해지기를.” 사랑은 기쁨입니다.

 

처음 사랑의 기쁨을 읽을 때는 어떤 구절들은 제 숨을 멎게 만들었고, 어떤 구절들은 저를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전체 내용을 알고 그 흐름 안에서 읽은 것은 아니었죠. 두 번째 읽을 때, 저는 이런 내적 움직임에 집중하였고, 그래서 이런 움직임들이 이전의 가르침을 얘기하건,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식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황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전체 글을 성장과 자비라는 관점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었습니다.

 

이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며, 저는 지난 30년간 통상적이지 않다고 부르면서 특정 상황들을 강조하는 이야기들로 얼마나 상처받고 또 소외감을 느끼는지를 우리와 나누었던 수많은 친구들과 믿는 이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이름으로 교황님께서 표현하신 내탓이로소이다 라는 이 말씀이 이들에게까지 닿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근본적인 방향 재설정

 

용서를 청하신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저희는 제도 교회의 이름으로 용서를 청하시는 것이 교리를 최소한으로 강조하고 사목적인 지원을 장려하겠다는 교황님의 결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온 성교회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목적 접근은 그 내용 자체로는 적절할지도 모르는 교리에 대해 판매 후 관리용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듯이, 오늘날 존재하는 악들을 단순히 말로만 비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6)또한 종종 우리는 믿는 이들이 자신의 양심을 키워 나가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어렵다고 느낍니다. 믿는 이들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복음에 응답하며 복잡한 상황 안에서도 자신만의 식별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대체가 아니라 양심의 함양을 요청받습니다.7)어떤 이들은 은총의 치유하는 힘과 복음의 빛을 주는 대신에 그저 복음을 주입시켜이를 다른 이들에게 던질 수 있는 죽은 돌로 만들어 버리려 합니다.” 8)

 

위에 인용한 구절들은 매우 강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은 6장 이후에서 전개하는 여러 가지 분명한 말씀들과 내용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그 장에서 다시 살피도록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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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 11, 121, 161번 참조.
2) 
사랑의 기쁨 11번​

3) 사랑의 기쁨 142번​

4) 사랑의 기쁨 200번​

5) 사랑의 기쁨 36번​

6) 사랑의 기쁨 35

7) 사랑의 기쁨 37

8) 사랑의 기쁨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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