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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 그리스도의 협력자, 활동에서의 동료, 교회에서의 어른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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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9-03 17:32 조회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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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그리스도의 협력자, 활동에서의 동료, 교회에서의 어른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예수의 사명을 나누려고 애쓰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이며, 이 둘과 맺는 관계가 세상 안에서 우리 존재의 질을 결정한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평신도로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파트너이고, 벗이며, 협력자이고 동료이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따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고린토 141) 또 사도 바오로의 다른 말씀에서처럼, 우리들은 하느님의 협력자라고 (고린토 139) 할 수 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하기를 갈망하고, 그분을 관상하고, 그분께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메시지를 이해하여 세상 어느 곳에나 이를 전하려 하는 그분의 제자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협력자가 되기를 원하며 이냐시오의 말씀처럼 영혼들을 도움으로써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계획의 신비를 알고 더 깊어지게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힘을 얻는다. 우리는 아이들, 벗들, 동료들, 신앙 안의 형제자매들, 파트너들, 상사들, 직원들, 환자들, 고객들 등 모두를 가르친다. 우리는 신중하게 선택된 몇 마디의 말로, 행동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으로 가르친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우연히, 혹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실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임을, 예수님과 함께 점차적으로 배우게 된다. 예수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하느님의 순수한 신비가 담긴 풍요로운 전통이 쌓여왔음을 알고 계시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쓰레기들도 축적되어왔음을 알고 계신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방식과 가르침은 진지하고, 근본적이고, 분별이 있으며 자유롭다. 평신도인 우리가 그분의 협력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분의 방식을 실행해야 한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실제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그 어떤 현실도 외면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관상해야 한다. 예수는 연회와 축제, 나들이, 여행, 장례식, 논쟁, 단식, 행사 및 많은 다양한 활동들에 자유롭게 참여하셨다. 예수는 온갖 유형의 사람과 어울리셨다. 이는 그 당시 사람들의 통념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특히 예수는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다가가셨다. 가르침을 행하는 우리들에게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신 협력자는 매우 특별하고 구체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 주님께서 가르치신 복잡한 진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배우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에게 영혼들을 돕는 것이란 바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나는 위에서 평신도들에게 적용하여 언급한 사도 바오로의 이 성경 구절을 매우 좋아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며 그분만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단지 그리스도의 협력자들이다. 우리가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사도 바오로의 다른 말씀을 좀 더 살펴본다면 우리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사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동료로서 현대의 회당과 마을, 들을 예수와 함께 걸어간다. (영성수련 91) 오늘날의 용어로 바꾼다면 우리는 현세적인 일 (교회헌장 31) 가운데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교회헌장 32) 안에서 예수와 함께 걸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예수는 고을과 성읍들을 걸어 다니셨다. 오늘날에는 도시와 교외지역과 마을들, 쇼핑 센터와 직장, 그리고 시민회관 등을 다니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예수는 회당에도 들어가셨고, 당시의 종교 관습 안으로도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의회 의원들과도 만나셨고, 종교적인 전통을 따르셨으며 여기서도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변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하신 가장 큰 기여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모든 다양한 상처를 치료하시고, 그들의 관심사를 돌려 놓으셨으며 그들을 움직이고 믿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인 우리들도 치유하고, 삶에 의미를 주고, 가난한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묶인 끈을 풀어주고 사람들의 존재 깊은 곳을 건들이고, 시민 사회나 종교 지도자들에게 도전하는 예수님의 이 모든 일에 동반자가 되기를 원한다. 특히 우리가 당신의 봉사 사명을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살아가게 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어가신 예수를 관상할 때 우리는 예수와의 일치로 인해 미친 사람 혹은 바보들이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나누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겸손하게 마음을 담아 깊이 받아들인다. (고린토 1118-21)

 

교회와의 관계

 

이 여정에서 우리는 형제자매가 되고 교회가 된다. 다시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는 평신도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사람들이다. (고린토 112)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 즉 빠스카 신비에 동참하게 되었고, 같은 빠스카 신비인 교회의 삶에도 동참하게 되었다. 견진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의 힘을 받아 친교사명을 보다 온전하고 깊게 이해하며 그에 참여하게 된다. 친교사명은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그분의 사명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체험을 통해 우리들은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존경하며 또한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 언제나 쉽지는 않고, 늘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많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또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는 예이지만 교회에는 아니오이다.” 우리는 또 뛰어난 이탈리아 작가인 이냐시오 실론이 말한 이런 논리를 따르고 싶어진다. 당에 속하지 않은 공산당원이고, 교회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계속됩니다.- 

 

 

*이 글은 프로그레시오 부록 #59(2004년 12월)에 실린 글로, 당시 CLC 부의장인 Jose Reyes가 2004년 에콰도르 퀴토에서 열린 마지스 프로그램에서 한 연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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